이인화내과

우리 몸의 '필터' 역할을 하는 신장은 손상되면 회복이 어려운 장기다.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인 신부전은 초기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린다. 하지만 방치할 경우 투석이나 이식 없이는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운 단계로 진행할 수 있다.

신부전은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내고 체내 수분·전해질 균형을 조절하는 기능이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크게 급성과 만성으로 구분되는데, 급성 신부전은 갑자기 기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적절한 치료 시 회복이 가능하다. 반면 만성 신부전은 3개월 이상 서서히 악화되며, 손상된 신장은 원래대로 회복되기 어렵기 때문에 꾸준한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

신부전의 가장 흔한 원인은 고혈압과 당뇨병이다. 고혈압은 신장의 미세혈관에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해 손상을 일으키고, 당뇨병은 높은 혈당이 혈관과 조직을 손상시켜 신부전으로 이어진다. 이 외에도 사구체신염, 다낭성 신증, 신장 결석, 요로 폐쇄 같은 신장 질환이나 자가면역 질환, 약물 남용, 비만 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가족력이 있거나 고령일수록 위험은 더욱 높다.

신부전은 초기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어 발견이 어렵다. 그러나 신장 기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 점차 증상이 나타난다. △ 쉽게 피로하고 무기력해지는 증상△ 식욕 부진, 메스꺼움, 구토 △ 소변량 변화(감소·야뇨) △ 손·발·얼굴 부종 △ 피부 가려움증 △ 근육 경련 등 전해질 불균형 증상 등 이러한 변화가 반복된다면 신장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일 수 있으므로 전문 진료가 필요하다.

신부전은 혈액 검사(크레아티닌, bun), 소변 검사(단백뇨, 혈뇨), 신장 초음파 등을 통해 진단한다. 만성 신부전은 완치보다는 진행을 늦추는 데 목표를 두며 치료는 원인 질환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특히 고혈압과 당뇨를 안정적으로 조절해야 신장 손상을 늦출 수 있다. 여기에 신장 보호제나 혈압약, 이뇨제 등 약물 치료가 병행되며, 단백질·나트륨·칼륨·인 섭취를 제한하는 맞춤 식단 관리도 필수적이다. 만약 신장 기능이 말기까지 저하된 경우에는 혈액투석이나 복막투석, 신장 이식과 같은 치료가 불가피하다.

신부전을 예방하고 신장 건강을 지키려면 생활습관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혈압·당뇨 환자는 혈압과 혈당을 목표 범위 내로 관리해야 하며, 약물 복용과 함께 식단·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특히 짜게 먹는 습관을 줄이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 위주의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해야 한다. 가공식품·인스턴트 음식 섭취는 줄이고, 하루 1.5~2리터 정도의 수분 섭취가 권장된다. 단, 이미 신부전을 진단받았다면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해 수분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은 혈액 순환을 개선하고 체중 관리를 도와 신장 부담을 줄인다. 금연·절주는 기본 수칙이며, 불필요한 진통제, 검증되지 않은 한약·건강 보조제 등은 피해야 한다. 또한 만성질환자는 정기 검진을 통해 신장 기능을 확인하고 조기 대응하는 것이 필수다.

신장은 한 번 손상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중요한 장기다. 초기 증상이 없어 방심하기 쉽지만, 생활습관 관리와 정기 검진, 원인 질환의 철저한 치료를 통해 신부전은 충분히 예방하고 진행을 늦출 수 있다. 자신의 신장 건강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이상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